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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27. 00:07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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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작성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아마 글을 쓰면서 오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글로 내 감정을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Suestories는 어떻게 보면 내 감정을 어딘가에 글로 뱉어내고 싶어 시작한 내 보금자리니 여기다 이 글을 쓰는 게 맞을 것 같다. 

 

 

오늘 저녁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중문을 열어 마침내 거실로 들어가면서 엄마를 찾았다. 익숙하지 않은 귀가 모습이다. 싱가포르에서 첫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본가로 들어 온 4년간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가 외치던 이름은 뚱이였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오니 항상 꼬리를 흔들며 마치 내가 자기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나를 반겨주었던 우리 집 애기가 없었다. 대신 TV 앞에 처음 보는 하얀색 도자기병이 있었다.

 

한 단락을 쓰는데 휴지를 7장 쓴 것 같다. 물론, 열흘 간 평균 2만보를 걸어야 했던 이탈리아 여행 후 생긴 약간의 몸살기운 때문에 계속 코가 막힌 상태이긴 했다. 사실 이탈리아 여행 내내 불안했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엄마한테 뚱이가 너무 아파하면 절대 날 기다리지 말고, 먼저 보내주라고 얘기했지만, 뚱이와 마지막 인사도 나누었지만, 그래도 직접 굿바이 인사를 하고 싶었다. 3월에 9월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한 나를 원망하며,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모든 성당에서 나의 성공은 내가 천천히 이룰 수 있으니까, 제발 뚱이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사실 빌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물론, 이탈리아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불안함과 함께 한 열흘이지만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그림 같은 자연과 사람의 손이 만든 거라 믿기 힘든 작품들을 봤고, 또 함께한 친구와 1년만에 회포를 풀었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다시 돌아갈 것 같다. 

 

내가 슬픔이 아닌 불안함만 가지고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나에게 뚱이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감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알았다. 엄마에게 카톡으로 유럽 사진을 보내면 1은 없어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뚱이가 세상에 없었다면 엄마는 아예 카톡을 보지 않을 거다', '1이 없어졌다는 것은 뚱이가 아파하지만 그래도 숨을 쉬고 있는 거다'라고 믿으며 혼자 사진을 계속 보냈고, 엄마가 읽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한 이틀 후 포기했다. 내가 혹시 엄마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모두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가. 대신 혹시 엄마나 동생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지 기다렸다. 생각보다 동생이 괜찮은 것 같아 안심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내가 소개해 준 외주 일을 아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동생은 뚱이가 없는 세상에 자기는 살 수 없다고 외치고 다녔기 때문에, 뚱이 투병기간 동안 아마 엄마 다음으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뚱이가 없다며 아예 좀비모드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나의 가설은 안타깝게도 모두 틀렸다. 엄마는 슬픔 속에도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있을까 내 카톡 속 사진만 확인했던 거고, 동생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으려고 일에 몰두했던 거였다.

 

나는 뚱이 소식을 공항버스 정거장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차에서 처음 들었다. 알아차렸다가 조금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집 근처 공항버스 정거장까지 엄마, 아빠가 차로 픽업와주셨는데, 조수석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뚱이가 없었다. 너무 잔인한 상황이었다. 멀리서 우리 집 차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조수석 창문이 열려있는지 확인했다. 뚱이가 있다면 무조건 열려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문은 분명 가장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근데, 차가 버스정거장 부근에 멈추자마자, 다시 완벽하게 올라갔다. 내 심장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차 안에서 뚱이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차분하게 설명하는 아빠의 얘기를 듣고, 장례는 했는지 물었다. 끝까지 전부 다 잘 챙겨서 보냈다고 한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흐르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우는 것 같다. 조수석에서 엄마는 나 때문에 다시 운다고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뚱이 얘기와 이탈리아 얘기를 하며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동생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인 눈물을 닦고 짐을 풀었다. 가족들의 선물을 나누어줬고, 씼고, 밥을 먹고, 다시 짐을 정리했다. 샤워를 하면서 오열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울지 않았다. 엄마랑 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나한테 어떻게 그것밖에 슬퍼하지 않냐고 물었다. 짓궂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아직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뚱이와의 이별은 마치 감기 같다. 낮에는 멀쩡한데, 밤에 지독하게 아픈 감기랄까? 이상하게 밤에만 아프다. 그렇다고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다. 7시간 깊은 수면을 한다. 근데 첫째날 보다 둘째 날 더 아프고, 둘째 날 보다 셋째 날 더 아픈 것 같다. 그것도 참 이상하게 밤에만 아프다. 낮에는 회사에 출근해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팀분들과 하하 호호 웃으면서 일을 한다. 거짓된 웃음이 절대 아니다. 정말 웃겨서, 즐거워서 웃는 거다. 근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약간 아프기 시작하고, 자기 직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가장 몸이 뜨겁고, 으슬으슬 아픈 것 같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고 하는데, 내 몸살기운이 여행 때문인지, 뚱이와의 이별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인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는 아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감기가 언제 나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너무 빨리 낫진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아파해도 될 것 같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뚱아, 무지개다리 넘어에서는 안 아팠으면 좋겠어. 우리 가족한테 와줘서 고마워. 함께하는 모든 순간 행복했어. 우리 가족이 강아지는 처음이라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다시 만나는 날 더 잘해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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